생각/보고 읽은 얘기들

A.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서문 中

精念 2012. 12. 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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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이 우리들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란 것도 마찬가지로 명백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신기하기는 해도 우연한 것으로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것이 아직 제어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단일적이고 가장 오래되고 또한 가장 항구적인 경향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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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왕들을 패하게 만든 민주주의가 상인과 자본가들을 맞아 뒤로 물러나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그렇게나 강성해지고 그 적들이 그렇게나 약화된 지금 그 발길을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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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움직여가고 있는 운동은 이미 너무나 강력해서 중지시킬 수 없는 것이지만, 지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속도가 빠른 것은 아직 아니다. 그 국민들의 운명은 아직도 자신들의 수중에 있다. 그러나 조만간에 그들은 통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사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부과된 임무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가능하다면 그 신앙심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다. 또한 그 도덕을 순화하고 그 행동을 제대로 가꾸며, 그 경험 부족 대신에 통치술을, 그리고 그 맹목적 본능 대신에 그 진정한 이익에 관한 자각을 도입하고, 그 정부를 때와 장소에 적응시키며, 인간과 조건에 따라서 그 민주주의를 수정하는 것이 그 임무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거의 생각도 하지 않는 일이다. 격류 속에 빠져있는 우리는 물결이 우리를 휩쓸어서 나락을 향해서 이끌어가는데도 뒤에 남기고 온 언덕 위에 멀리 보이는 유적으로부터 못내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방금 기술한 거대한 사회혁명이 유럽의 어느 나라에 있어서보다도 프랑스에서 급격한 진전을 보였으나 항상 교도가 따르지 않는 진전에 그쳤다. 국가의 수뇌들은 그런 혁명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혁명은 그들의 동의도 없는 채 혹은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채 진전됐다. 프랑스 국민들 가운데 가장 권력 있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도덕적인 계층들이 그 혁명을 교도하기 위하여 그것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결국 그 야성적인 본능에 내맡겨졌으며, 부모의 지도를 전혀 받지 못한채 거리에서 마구 자라나 사회의 악과 병폐에만 익숙한 그런 어린이들처럼 자라났다. 민주주의가 갑자기 권력을 획득했을 때 사람들은 그 존재를 별로 알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변덕에 비굴하게 굴복했다. 민주주의는 힘의 우상으로서 떠받을어 졌으며, 또한 좀 뒤에 민주주의가 그 자체의 과오 때문에 약화되자 입법자는 민주주의를 교도하고 그 악폐를 시정하는 대신에 경솔하게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민주주의 통치에 적합하도록 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으며 모든 민주주의를 정부에서 배제하려는 노력들만 했다.
 그 결과로 민주주의 혁명은 이런 혁명을 유익한 것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법률, 사상, 관습 및 도덕에 있어서의 동시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못한 채 사회의 본체 속에서 진행됐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는 그 악폐를 더욱 줄이고 그 천부의 이점을 더욱 이끌어낼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가 초래한 나쁜 점은 이미 깨닫고 있지만 그것이 가져다 줄 이점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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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이 관대하고 정당할 떄는 민중들도 귀족들에게 애착을 가졌으며, 마치 신이 내리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로 그들의 수탈에 대해서 저항이나 굴종도 없이 복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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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권력의 행사나 복종의 습관으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부정하다고 믿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부정하게 탈취되고 억압적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통치에 복종하게 되면 타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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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여기는 법률에 대해서 동등한 애정과 존경심을 느끼게 될 사회, 정부의 권위가 신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필요한 것으로서 존중되는 사회, 그리고 국민은 감정이 아닌 냉철하고 합리적인 설득에 따라서 최고 통치자에게 충성을 하게 될 그런 사회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을 잘 알게 된 민중은 국가의 이점으로부터 혜택을 얻기 위하여 국가의 요구를 만족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결사가 귀족들의 개인적인 권위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며, 공동체는 폭정과 방종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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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광신이 없어지고 나면, 공동체 성원들의 이해와 경험에 호소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엄청난 희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각 개인은 약한 자신을 보호하려면 마찬가지로 동료들과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을 돕는 한에서만 그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떄문에,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과 일치한다는 것을 마땅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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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이 방금 포기한 조상들의 제도, 사상, 그리고 습관 대신에 우리들이 채택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제왕의 마력은 무너져버렸지만, 거기에는 법률의 존엄성이 뒤따르지 않았다. 민중은 모든 권위를 경멸할 줄은 알게 되었지만 아직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옛날에 존경심과 사랑이 짜내던 것보다도 오늘날 공포심이 긁어 내는 것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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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의 분화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갈라 놓았던 거리를 좁혔지만, 그들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들 사이의 증오는 더욱 커지고 서로 권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투기심과 공포심은 더욱 격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양편 어느 쪽에도 권리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지는 았으며, 양편 모두 힘만이 현재를 위한 주장의 근거이지 미래를 위한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은 조상들의 신앙심은 없이 조상들의 편견만을 지니고 있으며, 조상들의 덕성은 없이 무지만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자기 행위의 기준으로서 이기심을 택했으면서도 그 기준을 통용시킨 과학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의 이기심은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헌신이 그랬듯이 맹목적이다.
 만일 사회가 조용하다면, 그것은 사회가 자신의 힘과 복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취약성과 불안정을 두려워하기 떄문이다. 단 한번의 노력으로 사회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악을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처방을 찾을 만큼 용기나 활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현세의 욕망 불평 슬픔과 기쁨은 무력하므로 끝나게 마련인 노인들의 정열이나 마찬가지로 분명히 눈에 보이는 것이나 항구적인 것으로 이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제가 제공하는 이점은 무엇이든지 버렸으면서도 현상태로부터는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고있다. 또한 귀족제도를 파괴하고 나서 우리는 만족스럽게 그 파편을 살피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곤 하는 것 같다. 지식세계의 여러 현상도 마찬가지로 한심하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그 진로를 방해받았고 무궤도한 정열에 휘둘려서 그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뒤집어 엎었고, 파괴하지 않고 남긴 것은 모두 뒤흔들어 놓았다. 프랑스 제국은 점진적으로 나타나거나 평화스럽게 수립된 것이 아니라 무질서와 분란의 와중에서 끊임없이 전진한 것이었다. 각 당파는 투쟁의 열기에 들떠서 자기 정적들의 주의 주장과 과열된 행동에 밀려 자기들의 본래 주장의 한계를 넘어 나아간다. 그래서 드디어는 자신이 노력하는 목적을 잊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이나 깊이 감추어진 본성과는 걸맞지 않는 길로 매진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목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상야릇한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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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대에는 탐욕스러운 사람과 노예 근성에 젖은 사람이 노예제도를 옹호한 반면, 독립적인 사람과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인류의 자유를 구하기 위하여 가망 없는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고상하고 관대한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그 의견과 취향은 서로 배치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예근성과 천박함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의 신성함과 위대함을 느낄 수나 있듯이 자유를 들먹이고, 자신들은 언제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온 권리들을 인류에게 주어야 한다고 언성을 높여 주장한다.

순결한 도덕성, 조용한 행동, 부유, 재능 등으로 해서 그들 동료들의 지도자로 적합한 덕 있고 평온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조국애는 성실하고, 그들은 조국의 행복을 위해서 최대의 희생을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흔히 문명의 적들 가운데서 나온다. 이들 지도자들은 문명의 혜택과 해악을 마구 혼돈시키고, 악한 것과 신기한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 곁에는 인류를 물질화하려 하고 정의로운 것은 개의치 않고 편리한 것을 겨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또한 신앙 없이 지식을, 덕성과는 동떨어진 번영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문명의 깃임을 자처하는 그들은 문명의 첨단에 거들먹거리고 서서, 전혀 그럴 자격도 없으려니와 그들에게는 주어지지도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종교인들은 자유의 적이고, 자유의 친구들은 종교를 공격한다. 마음이 고상한 사람과 귀족은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가장 천박하고 노예 근성에 젖은 자가 독립자존을 주장한다. 정직하고 개명된 시민들이 모든 발전에 반대하는가 하면, 애국심도 원칙도 없는 사람들이 문명과 지성의 사도로서 나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보다 앞서 지나간 세기들의 운명도 그랬던가? 모든 사물이 온당한 관계 속에 존재하지 않고, 덕성에는 천재가 따르지 않고 천재에는 명예가 따르지 않으며, 질서를 옹호하는 것이 억압을 지지하는 것과 혼동되며, 자유를 신성한 것으로 기리는 것이 법을 경멸하는 것과 혼동되고, 양심이 인간 행동에 비추는 빛이 흐려지고, 더 이상 금지나 허용도, 명예나 치욕도, 거짓이나 진실도 없어 보이는 오늘날과 같은 세계에 인간이 언제 살았던가?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드심에 있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적 황폐성과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 내버려 두리라고 나는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은 유럽의 여러 지역사회에 좀 더 조용하고 좀 더 확실한 미래를 예정하고 계시다. 나는 그분의 계획들을 모르지만,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믿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분의 정의를 의심하기 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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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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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쯤 전에 귀족사회와 기독교의 한계에 갇혀있던 사람의 통찰도 이정도인데...

뒤를 돌아보며 지적 시건방만 떨었지 앞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한적도 없으면서 "멘붕한" 스스로를 쪽팔리고 한심하게 느끼게 하는 명문

"자신이 노력하는 목적을 잊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이나 깊이 감추어진 본성과는 걸맞지 않는 길로 매진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목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상야릇한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